
분장실에서
- 장석남
오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족해
중얼거리며 거울을 보네
분 뚜껑을 열고 조용히
나를 지우기 시작하네
오늘 하루
걷고 먹고
말한 모든 것이
나를 지워가던 일
귀가 길에서 모란의 몰락을 보았네
오늘은 아주 조금 나를 걷어낸 것으로 족해
거울 앞에서
얼룩진 부분부터 지우네
저녁은 지워지지 않네
전기현 : 오늘 하루 걷고, 먹고, 말한 모든 것이 나를 지워가던 일... 이라는 대목을 가만히 바라봅니다.
나 자신으로 살기가 참 힘들다는 걸, 시인이 우리 대신 이렇게 써놓았다는 생각이 드네요.
무대에 오르는 피에로처럼 분장도 하고, 때론 아무도 몰라볼 정도로 변장도 하고, 내 몫의 하루를 살아낸 저녁. 비누거품을 가득 내서 꼼꼼하게 나 아닌 나를 닦아냅니다.
다 지워냈을 때 마주친 내 눈빛이, 너무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... 생각해봅니다.
오롯이 나 자신이 되는 때는 오직 혼자 있을 때 뿐일 것이다. 그 외엔 누군가의 자식, 형제, 자매, 스승, 제자, 상사, 부하, 친구, 갑, 을, 병, 정... 많은 가면을 쓰는 페르소나가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채로 인생을 살아가겠지.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 인간이 되는 것을, 나이가 먹은 지금에서야 조금 알듯 말듯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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